만일 내일 아마존에서 새 부족을 발견한다면, 이 부족이 틀림없이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물질적으로 번영을 누릴 거라고 ‘연역적으로’ 가정할 과학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
그런데 이 유쾌한 사람들이 상상 속의 신에게 맏아이를 바치는 의식을 행한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하자.
그러면 많은(심지어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은 이 종족이 우리의 도덕규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어느 모로 보나 타당한 그들만의 규범을 갖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과 행복의 연관성을 끌어내는 순간, 위와 같은 인류학적 판단은 이 종족 구성원들이 지구 상 어느 집단 못지않게 심리적 사회적으로 충족된 삶을 산다는 말이 된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에 대한 사고방식의 불균형은 우리의 이상한 이중 잣대를 보여준다. 그 이유는 인간의 행복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모르는 ‘척하느라’ 그런 건 아닐까.
■ 서론 도덕의 풍경_ 나쁜 삶과 좋은 삶 pp.34~35
지진이라는 재난이 대제국 중국을 모든 국민과 함께 집어삼키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그런데 중국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한 인도적인 유럽인이 이 엄청난 재앙 소식을 접하고 측은해한다고 생각해보자. (…)
이 모든 훌륭한 철학적 고뇌가 끝나고 인도적 감정이 한번 상당량 표출되고 나면, 그는 본업으로 돌아가 자신을 위한 즐거움을 좇을 것이다.
그런 재앙은 일어난 적이 없다는 듯 여느 때처럼 편안하고 고요하게 휴식을 취하고 취미를 즐길 것이다. 반면 극히 사소할지라도 자신에게 닥친 사고는 보다 큰 혼란을 불러올 것이다.
그가 내일 새끼손가락을 잃는 사고를 당한다면 오늘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1억 명의 인류가 어디선가 재난을 당한다 해도 그들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는 깊이 안심하고 코까지 골며 잠에 빠질 수 있다. (…) 그렇다면 이 인도주의자는 자신에게 일어날 작은 사고를 막기 위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1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할 것인가?
■ 2장 선과 악_ 이기적 유전자와 협동 pp.111~112
악의 치료법이 존재한다고 상상하면 보복의 충동에는 커다란 결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살인자를 처벌할 한 방법으로 치료를 ‘보류할’ 가능성을 고려해보자.
이것이 대체 도덕적으로 말이 되는 일일까? 이런 치료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죄를 짓기 전에 그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어떨까?
그래도 그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이 있을까? (…) 우리는 자유 의지에 애착을 갖고 있으면서도, 뇌의 기능 이상이 우리가 가진 최선의 의도를 짓눌러버릴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이처럼 이해의 관점을 바꾸는 것은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더 깊고 더 일관되며 더 동정적인 관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 2장 선과 악_ 도덕적 책임 pp.187~188
일상적인 대화에서 믿음과 지식을 구분하는 것은 대체로 확실함의 정도에 주목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세상에 대한 내 믿음이 참이라고 정말 확신할 때 나는 ‘안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덜 확실한 경우에는 ‘아마 참일 거라고 믿어’라고 말할 것이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 대부분은 이 두 극단 사이에 존재한다.
(…) 하지만 ‘믿음’이 정말 뇌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인지 아닌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필요도 있다. 인간의 기억에 대한 이해가 늘면서 더 조심스러워지는 건 틀림없다.
지난 50년간 ‘기억’이라는 개념은 몇 가지 형태의 인지로 분화되었는데, 이것이 현재 신경학적으로나 진화론적으로 구별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뇌 지도를 그렸을 때 ‘믿음’ 같은 개념이 몇 가지 분리된 과정 속에 흩어져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게 된다. 실제로 믿음은 특정 형태의 기억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 3장 믿음_ 믿음이란 무엇인가 pp.218~219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는, 어떤 진술을 이해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참이라는 암묵적 동의를 수반하지만, 불신에는 연속적인 거부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몇몇 심리학 연구들은 이러한 추측을 지지하기도 하는 것 같다.
(…) 즉 피험자들은 ‘참’이라고 판단할 때는 ‘거짓’ 혹은 ‘판단불가’로 판단할 때보다 훨씬 빨리 버튼을 눌렀다. 믿음과 불신이라는 정신 상태를 비교한 결과, 믿음은 내측전전두피질MPFC의 보다 큰 활성화와 관련됨이 밝혀졌다.
전두엽의 이 부위는 사실적 지식과 이와 관련된 정서적 연상과의 연결, 보상에 따른 행동의 변화, 목표 지향적 활동에 관여한다.
MPFC는 지속적인 현실감시와도 관련되며, 이곳에 손상을 입으면 지어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즉 자신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뇌에 어떤 원인이 있든지, 이야기를 지어내는 증상은 ?
지금도 서가가 빼곡히 들어찬 공간에서 길을 잃으면 재밌는 모험에 나선 기분이 들고, 일정한 원칙에 따라 배열된 문자와 숫자가 언젠가는 나를 약속된 목적지로 인도해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넘친다. 책은 먼 옛날부터 예언의 도구였다.
그래서 노스럽 프라이는 “큰 도서관은 많은 언어를 구사하고, 텔레파시로 교감하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듯하다”라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_12쪽
모니터와 코덱스는 상부상조하며, 독서가의 책상에서 얼마든지 원만하게 공존할 수 있다. 가상 도서관을 종이와 잉크로 된 전통적인 도서관에 비교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독서에는 때때로 깊이와 환경이 필요하고, 느리게 독서해야 할 때도 있다.
둘째, 전자 테크놀로지가 아직은 완전하지 않아 계속 발전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어떤 저장장치가 폐기되면 옛날에 그곳에 저장했던 자료를 되살려내기 어렵다.
셋째, 종이책을 휘리릭 넘겨보고 서가 사이를 배회하는 것도 독서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운 부분인데, 모니터에서 위아래나 좌우로 움직이는 것으로는 그런 즐거움을 대신할 수는 없다.
여행담을 읽고 입체 영화를 본다고 이것이 실제 여행과 똑같을 수 있겠는가! _89쪽
우리는 어떤 도서관에서는 희망을 읽고, 어떤 도서관에서는 악몽을 본다. 우리는 도서관을 그림자에서부터 끌어낸다고 믿는다.
우리가 즐겁게 살기 위해서 책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부정확하고 어리석은 생각에서 비롯되는 위험, 작가가 겪는 경련이나 장애에 대한 걱정, 시간과 공간의 제약 등에 대해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책을 만들어내는 일에 몰두한다.
우리는 인쇄기가 발명된 이후 발간된 책보다,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이야기꾼들이 대대로 꿈꾸며 상상했던 책들로 훨씬 큰 도서관을 꾸밀 수 있다.
상상의 세계에서는 아직 쓰이지 않았을 뿐,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실수와 결함에서 벗어난 책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내 도서관 앞의 회화나무 두 그루가 드리운 어둠에 앉아, 완벽한 책들로 채워진 서가들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목록에 더하지만, 그 책들은 이튿날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_301쪽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게, 소설에서 표현된 세계는 똑같아 보인다. 모든 책이 하나의 도서관에 있는 셈이다.
그는 스위스, 오크니 제도(諸島), 독일, 러시아, 잉글랜드, 황량한 타타르 지역 등 곳곳을 떠돌아다니지만, 어떤 사회에서도 고유한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를 가나 똑같아 보인다.
그에게 세상은 아무런 특색도 없는 곳이다. 그는 이런저런 역사책에서 구체적인 것들을 배우지만 추상적으로도 생각할 줄 안다.
“같은 종(種)을 지배하고 학살하는 정치 문제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 읽었다. 선을 향한 뜨거운 열망과 악에 대한 증오심이 내 안에서 불끈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하지만 이런 교훈도 결국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도서관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글로만 가득하다는 걸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결국 깨달았을 테니까. _326쪽
한층 더 큰 즐거움을 약속하는 책들로 가득한 서가들 사이를 거닐면서 느끼는 도서관을 향한 사랑, 도서관을 구석구석까지 보려는 열망, 그리고 도서관을 완성했다는 자부심은 우리가 온갖 불행과 후회로 가득한 삶을 살더라도 질투하는 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광기 뒤로 감추어진 질서에 대한 더 큰 친밀함, 위안, 어쩌면 구원의 믿음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그런 증거는 가장 행복하고 가장 감동적인 것이기도 하다. _336쪽
<< 헌재, 긴급조치 1·2·9호 위헌…전원일치(3보) >>
헌법재판소는 21일 유신체제하에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도구가 됐던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날 유신헌법 53조와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 심판사건에서 "대통령 긴급조치 1호, 대통령 긴급조치 2호,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긴급조치 9호)는 모두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고했다.
재판관 8명이 전원 위헌으로 판단했고 반대 견해는 없었다.
다만, 긴급조치 1·2·9호의 근거가 된 유신헌법 53조는 심판 대상에서 제외했다.
헌재는 긴급조치 1·2호에 대해 "입법목적의 정당성이나 방법의 적절성을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고 헌법개정권력의 행사와 관련한 참정권,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한다"고 밝혔다.
긴급조치 9호에 대해서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헌법 개정권력 주체인 국민의 주권행사를 지나치게 제한한 것으로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3/03/21/0701000000AKR20130321131800004.HTML?template=2087
<< "제2철도공사 생기면 1인당 운임 부담 5500원 증가" >>
박수현 의원 "제2철도공사는 철도 민영화를 위한 국토부의 꼼수"
정부가 '제2철도공사' 설립 추진을 사실상 공식화한 가운데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내부적으로 "제2철도공사 설립으로 인한 경쟁 효과는 없고 중복과 비효율을 초래할 것"이라는 취지의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향후 민영화의 빌미를 조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보고서는 이달 작성됐다. 공사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공사 내부에서는 제2철도공사 설립 추진을 '철도 민영화' 수순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제2철도공사 설립해도 경쟁은 발생하지 않고 지역 독점으로 귀결"
민주통합당 박수현 의원실이 공개한 철도공사의 '제2철도공사 설립 검토 의견'을 보면 "수서발 KTX는 기존 서울·용산발 KTX와 주된 이용객이 달라 경쟁은 발생하지 않고 지역 독점으로 귀결"된다며 "경쟁 도입 목적 상실"을 초래할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서울 지하철의 경우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가 있지만 경쟁 관계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 관계 하에 지역 독점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제2철도공사'의 경우 "중복되는 노선에서 같은 기능을 수행하며, 상호 간 역할 중복, 과다한 거래비용 등으로 분리의 실익 기대는 곤란"하다고 분석했다.
국가 재정 낭비 문제도 거론했다. 이 보고서는 "신규 설비 투자 및 중복 비용으로 산업 전체의 비효율을 초래하고 국가 재정을 낭비"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제2공사 설립 시 초기 투자 비용으로 3000~4000억 원 소요가 예상되며, 인건비, 감가상각비 등 매년 약 600억 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낭비"될 것으로 봤다.
보고서는 또 "(제2철도공사에) 동일 차량 편성 운영 시, 제2공사는 코레일 대비 영업이익 축소가 불가피하다. 연간 약 850억 원의 국가 재정 손실이 예상"된다고 적고 있다.
850억 원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고객 1인당 평균 약 5500원의 운임 부담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공사·공단으로 이원화된 현 구조에서도 일관된 안전 관리와 시스템 표준화가 곤란하며, 운영자까지 분리할 경우 위험 요인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봤다. "특히, 열차 운행과 무관한 철도시설공단으로 관제권 이관 시 안전 관리에 심각한 허점이 우려되며, 특히 이례 상황 발생 시 대응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제2철도공사는 민영화로 가는 우회로"
보고서는 "'제2공사' 논의는 조직의 위상 강화를 목적으로 한 철도시설공단의 조직 강화 기조에서 비롯됐고, 철도 산업 내 갈등과 분열만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가 "(철도 및 KTX) 민영화가 어려워지자, 철도 운영 효율성과 장기적인 철도 산업 발전 방향과는 관계없이, 조직의 연명과 산업 내 주도권 장악을 위해 '제2공사'를 통한 운영 부문 세분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결론을 통해 "정부 정책이 심층적 검토 없이 '땜질식 처방'으로 추진되어선 곤란"하다며 "민영화에 대한 신임 장관의 (부정적인) 입장 발표 이후, 갑작스럽게 '제2공사'로 정책 선회를 할 경우 그간의 논리를 정부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다. 현재 철도 산업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심층적 진단과 중장기적 발전 방향이 부재한 상태에서 '제2공사'는 임기응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이어 "결국, 제2공사화는 철도 산업 상하 분리를 고착화시키고 운영자의 세분화를 초래, 향후 민간 사업자의 진입을 용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수현 의원은 "제2철도공사 설립은 민영화에 따른 재벌 특혜 시비를 없애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결국 민간 사업자의 진입을 용이하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고, 인천공항 사례와 같이 공사 설립 이후 지분 매각이라는 방법으로 민영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박 의원은 "결국 제2철도공사 설립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철도 민영화로 가는 우회로"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은 것은 그(이용훈)의 조직 관리 능력이었다.
과거사 정리 작업을 포함한 사법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법원 내 기득권층, 즉 주류 법관들의 반발을 무마시킬 수 있는 대법원장이 필요했다.
이 대법원장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어 보였다. 그가 1993년 서울지법 서부지원장을 지낼 때 젊은 판사들이 사법부 개혁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리며 집단행동을 시도했다.
이 대법원장은 직권으로 서부지원 전체 법관회의를 열어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대법원장이 주재하는 법원장 회의에 참석해 이를 전달했다.
자칫 더 큰 사태로 이어질 수 있는 판사들의 집단행동에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해 사법부 수뇌부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후배 판사들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말이 통하는 선배로, 동료 고위 법관들한테는 후배들을 잘 다룰 줄 아는 판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_35~36쪽
소수의견은 해당 재판 결과에는 당장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하급심 판사들에게 보다 폭넓은 법리 해석의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일선 법원의 판사들이 대법원 판례에서 벗어나 새로운 법리 해석을 시도하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대법원 다수의견으로 구성된 판례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판례 변경을 시도해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법원이 될 수 있다. 소수의견은 바로 이런 판례 변경을 이끌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판결이 내려질 당시에는 소수의견이었던 것이 시대가 바뀌면서 다수의견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대법관 시절인 1997년 11월 20일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낸 소수의견이 대표적이다. _61쪽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광고가 헌법적 기본권인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8대 5로 2심 판결을 깨고 강의석의 손을 들어줬다.
비기독교 학생들을 위한 대체 과목을 편성하는 등의 조처도 없이 종교 교육을 강요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이었다.
다수의견에는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롯해 이홍훈,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전수안, 김능환, 민일영 대법관이 가담했다.
다수의견은 김영란 대법관이 주도한 것으로 자유와 인권 수호의 보루로서 최고 법원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었다. 따라서 독수리 형제들뿐만 아니라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도 흔쾌히 동의할 만했다. _86~87쪽
박시환 대법관은 전원합의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만약 자기 혼자서만 유죄를 주장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오면 결국 소부합의 때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던 셈이 되기 때문이다. (……) 그러나 막상 전원합의체가 열리자 박 대법관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의 예상과 달리 무려 4명의 대법관이 유죄 의견에 가담한 것이다. ‘6대 5’, 단 한 표 차이로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내용적으로는 유ㆍ무죄 의견이 막상막하였다. 박 대법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독수리 형제들 가운데 김지형 대법관을 제외한 이홍훈, 김영란, 전수안 대법관이 지지해준 덕분이었지만, 박 대법관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나머지 한 표였다.
그는 다름 아닌 이 사건의 주심 김능환 대법관이었다.
박 대법관의 기억에 그는 분명히 소부합의 때 무죄 취지의 의견을 냈다. 박 대법관이 전원합의체 회부를 주장했을 대도 그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랬던 그가 전원합의체에서 독수리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유죄 의견에 가담한 것이다. _149~151쪽
검찰의 의도가 정말 대법원장의 발목을 잡으려는 것이었다면 그 효과는 제대로 본 셈이었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탈세 고발 사건은 결국 무혐의로 처리되었지만, 그의 도덕성과 신뢰도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취임 초기만 해도 강력한 사법개혁 의지를 보이며 대법원 구성 다양화와 사법부 과거사 정리 등을 추진해, “참여정부에서 단행한 인사 가운데 가장 잘된 인사”라는 말을 들었던 이 대법원장으로서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대법
사법연수원 동기라면 고3 시절과 비슷한 사법연수원 생활을 2년 동안 함께한 친근하고 끈끈한 관계라 이러한 청탁성 발언이 전혀 어색하지 않으며, 듣는 사람도 외압으로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수년간 같이 대학을 다닌 동기거나 선후배인 법조인이라면 역시 우리 식구나 다름없으니, 간단한 청탁성 대화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로 받아들일 터다.
_ p.22 (나경원 사건의 진실 中)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범죄를 저질렀다는 여러 의혹에 휩싸인 후보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판국에 모든 것을 검찰에 맡겨두고 의혹 제기조차 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국가기관의 오만함과 권의 위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_ p.41 (정봉주의 유죄판결은 정당한가 中)
대한민국 법조계는 서울대의 세상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서울대 법대의 세상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부장판사급 이상의 고위법관, 검사장급 이상의 고위검사, 주요 로펌의 파트너급 변호사 등 고위 법조인을 살펴보면 대다수가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_ p.71 (연세대 나와 콤플렉스 있니? 中)
우려스러운 것은 험난한 과정을 뚫고 법조계에 입성하는 법조인들이 가지게 되는 과도한 보상심리다. 이러한 보상심리는 때론 도덕적, 윤리적 의무보다 더 강하게 법조인들을 지배한다.
_ p.83 (청춘을 다 바쳐서 붙은 시험인데 中)
몇 년 전까지도 판사들은 은행 창구에 가지 않았다. 지점 직원들이 필요한 서류를 들고 판사실로 직접 찾아뵙고 은행 업무를 봤다.
그런데 서울의 어떤 법원 내에 있는 은행 지점에 신입 직원이 들어왔는데 이런 관행을 모르고 판사실에 전화해서 적금 만료되었으니 찾으러 오라 전화를 했다.
판사 20년 만에 이러한 전화를 처음 받은 판사는 노발대발해서 지점장에 연락 후 격노한 끝에 신입직원과 지점장이 판사에게 석고대죄 한 사연이 전해오고 있다.
_ p.108(판사님을 은행까지 내려오라고 中)
법원이 재벌총수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며 가장 많이 드는 이유가 기업과 사회에 기여한 공인데, 이처럼 판사는 기존 사회질서를 구축해온 사람들의 노고에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이해심이 넓은 모습을 보인다.
재벌 실형 선고를 망설인 가장 큰 이유로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에 처할 위험이 있는데 도박을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판결문에 쓴 판사도 있다.
_ p.165(유전무죄, 무전유죄 中)
법원 민주화? 별거 아니다. 근무평정이나 인사에서 기준과 절차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만들어, 더 이상 눈치 보며 판결문을 쓰는 판사가 없도록 해야 한다.
판사들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납득하고 비판할 수 있는 인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지금처럼 고위 법관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법관의 앞날을 좌지우지하는 인사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_ p.204(눈치 보는 판사님 中)
< 교단을 떠나며, 고통 받는 청년들에게 바치는 책 >
교단에서 아이들의 삶에 가슴 아파하며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의 근원을 묻고 힘없는 이들과 함께하고자 노력해온 교사 이계삼이 십여 년의 교직 생활을 떠나며 준비한 책이다.
그가 글을 쓰던 교실에서 ‘야자’를 하던 제자들, 고생스럽게 초중고 12년을 보내고도, 또 어렵게 대학을 다니거나 세상에 나와서도 어깨 움츠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청년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다른 삶’을 살아보자고 함께 ‘다른’ 길을 걸어보자고 건네는 책이다.
세상에는 고통 받는 청춘들과 소외된 노동으로 지쳐가는 이들의 감각을 달콤한 위로로 마비시키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곧 닥쳐올 석유 없는 세상, 핵으로 오염되어가는 지구의 모습을 외면하고 자신의 먹을거리 하나 키우지 못하는 삶에게 그저 힘내라는, 마음을 비우라고 하는 이야기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세상의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래서 우리가 왜 힘든지, 누가 우리의 몫을 우리의 미래를 빼앗아가고 있는지 ‘진짜 공부’를 함께 해보려는 이들에게 이 책은 소중한 커리큘럼이 될 것이다.
“청년들의 길잡이를 자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다른 삶을 살아낸 훌륭한 스승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거짓과 고통의 세상에 균열을 낼 용기와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삶’을 살아낸 스승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공부
공부는 왜 하는가? “‘편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 데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당대 현실의 실체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게 된, 다른 의미에서 진짜 ‘공부’가 가능해진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는 E. F. 슈마허, 더글러스 러미스, 웬델 베리, 도로시 데이, 하워드 진, 다카기 진자부로 같은 중요한 지식인들을 정성스럽게 소개하며,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고 다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전하고자 한다.
물질이 주는 “안락한 삶을 거부하는 정신”, “다른 삶에 대한 갈망”이 청춘들에게서 살아나기를,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살기 위해 고민하는 우리들이 많아지기를 저자는 간절히 바라며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한 편 한 편 써온 것이다.
1부는 ‘공부의 이유’이다. 작은 규모의 일터에서 ‘좋은 노동’을 하는 ‘좋은 삶’을 꿈꾼 슈마허, 탐욕의 ‘석유 경제’를 떠나 흙에 뿌리내린 소농의 삶에서만 미래를 꿈꿀 수 있음을 말한 웬델 베리, 경제성장론과 ‘타이타닉 현실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더글러스 러미스, 그리고 교육이 불가능한 대학의 현실을 고발하는 글들을 소개하며 우리가 진정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2부 ‘이 시대를 공부하다’에서 저자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이후의 세계, 석유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역사와 평화, 정치와 민주주의, 교육과 진정한 문학의 힘 등을 고민하고 공부하기를 권한다.
3부를 ‘희망을 공부하다’라고 이름 붙인 저자는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묻고, 그 무모한 질주와 경쟁에 홀로 서서 버틴 지식인들을 소개하며, 힘없고 가난한 풀뿌리 민중의 세계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자본과 권력의 편을 떠나 시민의 곁에 섰던 다카기 진자부로, 흑인인권운동에 평생을 바치면서 희망과 낙관을 잃지 않았던 하워드 진,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삶의 모범을 보여준 도로시 데이의 삶을 곡진하게 전하는 글에서 독자는 삶의 진실을 바라보고 실천하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고민하고 땀 흘리는 ‘좋은 삶’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커리큘럼 >
교단을 떠난 저자는 그가 살고 있는 고향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 싸움에 함께하며 1년을 보냈다.
핵발전으로 만들어낸 전기를 대도시로 끌어가기 위해 세우는 송전탑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고향 땅의 어른들과 함께 웃고 울며 보낸 한 해였다.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거짓 위로를 “그만”하고 싶어 교단을 떠난 그는 현실의 싸움 속에서 더 절실해지고 ‘사상’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만일 내일 아마존에서 새 부족을 발견한다면, 이 부족이 틀림없이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물질적으로 번영을 누릴 거라고 ‘연역적으로’ 가정할 과학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
그런데 이 유쾌한 사람들이 상상 속의 신에게 맏아이를 바치는 의식을 행한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하자.
그러면 많은(심지어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은 이 종족이 우리의 도덕규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어느 모로 보나 타당한 그들만의 규범을 갖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과 행복의 연관성을 끌어내는 순간, 위와 같은 인류학적 판단은 이 종족 구성원들이 지구 상 어느 집단 못지않게 심리적 사회적으로 충족된 삶을 산다는 말이 된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에 대한 사고방식의 불균형은 우리의 이상한 이중 잣대를 보여준다. 그 이유는 인간의 행복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모르는 ‘척하느라’ 그런 건 아닐까.
■ 서론 도덕의 풍경_ 나쁜 삶과 좋은 삶 pp.34~35
지진이라는 재난이 대제국 중국을 모든 국민과 함께 집어삼키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그런데 중국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한 인도적인 유럽인이 이 엄청난 재앙 소식을 접하고 측은해한다고 생각해보자. (…)
이 모든 훌륭한 철학적 고뇌가 끝나고 인도적 감정이 한번 상당량 표출되고 나면, 그는 본업으로 돌아가 자신을 위한 즐거움을 좇을 것이다.
그런 재앙은 일어난 적이 없다는 듯 여느 때처럼 편안하고 고요하게 휴식을 취하고 취미를 즐길 것이다. 반면 극히 사소할지라도 자신에게 닥친 사고는 보다 큰 혼란을 불러올 것이다.
그가 내일 새끼손가락을 잃는 사고를 당한다면 오늘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1억 명의 인류가 어디선가 재난을 당한다 해도 그들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는 깊이 안심하고 코까지 골며 잠에 빠질 수 있다. (…) 그렇다면 이 인도주의자는 자신에게 일어날 작은 사고를 막기 위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1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할 것인가?
■ 2장 선과 악_ 이기적 유전자와 협동 pp.111~112
악의 치료법이 존재한다고 상상하면 보복의 충동에는 커다란 결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살인자를 처벌할 한 방법으로 치료를 ‘보류할’ 가능성을 고려해보자.
이것이 대체 도덕적으로 말이 되는 일일까? 이런 치료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죄를 짓기 전에 그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어떨까?
그래도 그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이 있을까? (…) 우리는 자유 의지에 애착을 갖고 있으면서도, 뇌의 기능 이상이 우리가 가진 최선의 의도를 짓눌러버릴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이처럼 이해의 관점을 바꾸는 것은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더 깊고 더 일관되며 더 동정적인 관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 2장 선과 악_ 도덕적 책임 pp.187~188
일상적인 대화에서 믿음과 지식을 구분하는 것은 대체로 확실함의 정도에 주목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세상에 대한 내 믿음이 참이라고 정말 확신할 때 나는 ‘안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덜 확실한 경우에는 ‘아마 참일 거라고 믿어’라고 말할 것이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 대부분은 이 두 극단 사이에 존재한다.
(…) 하지만 ‘믿음’이 정말 뇌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인지 아닌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필요도 있다. 인간의 기억에 대한 이해가 늘면서 더 조심스러워지는 건 틀림없다.
지난 50년간 ‘기억’이라는 개념은 몇 가지 형태의 인지로 분화되었는데, 이것이 현재 신경학적으로나 진화론적으로 구별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뇌 지도를 그렸을 때 ‘믿음’ 같은 개념이 몇 가지 분리된 과정 속에 흩어져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게 된다. 실제로 믿음은 특정 형태의 기억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 3장 믿음_ 믿음이란 무엇인가 pp.218~219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는, 어떤 진술을 이해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참이라는 암묵
< 군대문화가 지배하는 한국 >
징병제 국가인 한국은 20세가 넘은 남자라면 신체적으로 결격사유가 있거나 그 외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예외 없이 군대에 가야 한다.
한국에서 군대에 간다는 것은, 한 명의 남자가 입대하는 개인적 인생과정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을 전쟁이 나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으로 보내야 하고, 좋아하던 오빠, 형을 눈물 흘리며 보내야 하는 가족의 큰 행사이며, 사랑하는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뜻하고, 어릴 적부터 같이 웃고 놀았던 친한 친구들을 긴 시간 만나지 못하게 되고, 학교친구나 사회에서 알게 된 지인을 더 이상 못 보게 되는 사회적 문제이며, 남북분단의 현실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젊은이들을 소집하여 훈련, 교육시켜 정예 군인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국가의 중요한 책무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한국에서는 군입대 문제로 항시 화제가 끊이지 않으며, ‘나라를 지킨다’는 당위적 민감성 때문에 공적 도덕성을 얘기할 때는 필히 등장할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국회의원이나 연예인, 프로스포츠 선수 등 지명도가 높은 사람들도 군대를 갔다 왔느냐, 안 갔다 왔느냐, 면제를 받았다면 과연 합당한 이유가 있었느냐를 두고 시비가 벌어져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기도 한다.
15년 전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되던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아들의 군 입대 의혹으로 타격을 입어 낙마한 적도 있고, 한창 인기를 누리던 미국영주권자인 아이돌 가수가 한국국적으로 신고하여 입대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미국시민권을 취득하자, 시끄러운 여론으로 인해 한국 입국을 거부당하는 일까지 발생했을 정도이다. 그 가수는 지금도 한국 입국이 금지되고 있다.
또 몇 년 전 유명 연예인이 치아가 안 좋아 치과치료를 받아 이빨을 몇 개 뽑았는데, 치아 문제로 신체검사에서 군 면제 판정을 받자 군 입대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치아를 뽑았다며 고발당해 재판을 받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나중에 일부러 치아를 뽑았다는 부분은 무죄판결을 받았음에도 그 연예인은 아직까지도 연예활동을 못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다른 부도덕한 문제에 있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고 빨리 잊는 편이지만 군대 문제에 있어서는 극도로 민감하다.
애국심이라는 부분도 있지만 ‘모두 다 가는데 너는 무슨 특권으로 안 가느냐’는 반발 심리와 ‘누구는 좋아서 그렇게 고생하고 온 줄 아느냐’는 피해 심리도 깔려 있다.
제대 후, 남자들은 회식자리에서나 친구들 모임에서도 군대 얘기는 빼놓지 않는다. 한국여자들이 남자들 얘기 중에 제일 재미없고 듣기 싫어하는 것이 남자들 군대 얘기라고 하며 더욱 듣기 싫은 것이 군대에서의 축구 얘기라고들 한다. 그렇게 여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군대 얘기를 왜 남자들은 잊지 못하고 계속 하는 걸까?
아마 감수성이 예민하고 한창 즐거워야 할 청춘 시절에 군대 가서 고생했다는 것과 남들이 하지 않은 고생을 나는 겪었다 라는 일종의 보상심리도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남자들끼리조차도 군대 갔다 온 사람치고 38선 근처에서 근무 안 한 사람 없고, 월남전 참전은 기본이고, 군복무 중 전쟁은 최소한 세 번 정도는 경험하였고, 훈련 중에 죽을 고비는 몇 번씩 넘겼으며, 뱀을 잡아서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농담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이러한 보상심리 문제가 국가정책에도 이슈가 되어 공무원 시험이나 인사고과 시 군필자에 대한 가산점을 줘야 한다는 주장과 한국남자라면 당연히 치러야 할 국방의 의무에 가산점을 주게 되면 여성들이 피해를 본다는 여성단체들의 반발로 국회까지 시끄럽게 한다.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군 문제는 그만큼 국가적, 사회적으로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여권신장과 더불어 여성기업인, 여성정치인들이 늘어나고 대기업이나 금융권에서도 여성임원이나 간부가 조금 늘어나긴 했어도 서구에 비하면 아직까지 한국은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이다.
젊은 남자가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복귀하여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회사의 선배사원들도 모두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므로 “선배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무
여러 ‘호모’ 가운데 요즘 가장 욕을 많이 얻어먹는 ‘호모’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일 법하다.
미국 월가의 데모대가 내뱉은 욕설이 결국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만든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닌가.
애덤 스미스 이래로 경제학과 인간 삶·사회를 지배한 것으로 간주된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이기심과 합리성으로 똘똘 뭉친 냉혈한이다.
<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대림북스)의 저자 요하네스 발라허 독일 뮌헨 철학대 총장은 같은 맥락에서, 즉 방법적 개인주의와 사적인 이익이란 가설에 기반을 둔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비판한다.
고찰의 출발점은 방법적 개인주의에 따라 개별 행위자와 그들의 결정이다. 경제행위나 시장에서의 결과는 물론이고 사회적 현상까지 모두 개개인에 의한 수많은 개별 결정의 결과로 여겨진다.
사적인 이익은 이익의 극대화라는 원칙이다. 경제와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 사람은 누구나 이익을 최대한 많이 창출하는 것을 늘 염두에 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현실의 인간은 어떤 때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이지만 어떤 때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그리고 시장은 나와 상대를 모두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파악하도록 강요했고 이러한 부정확한 인식 또는 사실과 인식 간의 간극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적인 세상에 대한 반성이 그렇다고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살해로 귀결해야 함은 아니다.
이 책을 포함해 행복학 관련 서적에서 자주 거론되는 부탄의 ‘국민총행복(GNH)’이 국내총생산(GDP)을 대체할 수는 없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넘어서야 하듯 GDP도 넘어서야 한다.
책에서 실행한 최후통첩게임은 함의가 적지 않다. 특히 기득권 계급에 더 교훈을 준다고 볼 수 있다.
A와 B라는 두 사람에게 100유로를 어떻게 나눌지 실험했다. A는 어떤 비율로 나눌지 제안하고 B는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다.
만일 B가 거절하면 A와 B 모두 한 푼도 못 받는다.
따라서 선택권이 없는 B로서는 조금이라도 건지는 게 이익이기 때문에 어떤 비율이 제시돼도 수락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예상이다.
실험결과 A가 B에게 20%(20유로) 이하를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그 제안이 거절당할 확률은 40~60%나 됐다.
효용 또는 이익만으로 인간사를 설명할 수 없다는 단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응당 대안이 마련돼야 하는데, 저자는 ‘스턴 보고서’로 유명한 니콜라스 스턴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 등 여러 의견을 제시하고 검토한다. 그중 경제학자 아마르티야 센의 5가지 기본자유 구상, 즉 ‘시장기회’ ‘사회보장’ ‘사회적 기회’ ‘정치적 참여권’ ‘투명성 보장’에 지면을 많이 할애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관한 논의도 빼놓을 수는 없다. 아쉬움이 없지 않다. 마지막 장의 제목을 “왜 우리 자신에게 달렸는가”로 정한 것은 본질적인 통찰과 미진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대부분 스스로 원해서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0071928415&code=90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