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전부터 노벨상 없애고~
자연생태계를 위한 상 만들다고~
이 연사 목소리 높여 외칩니다!!
노벨상과 지구 종말
만약 인류가 핵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종말을 맞는다면
여기에 노벨상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노벨상을 지금이라도 없애든가, 아니면 지구 생태계를 살리는 사람에게 수여하도록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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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드윅(1891-1974):영국의 물리학자. 1932년 중성자 발견. 중성자는 원자 핵 내부를 여는 열쇠임. 이 일로 1935년 노벨상 수상
- 엔리코 페르미(1901-1954):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속도가 느린 중성자는 원자핵 내부의 중성자나 양성자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이를 이용하면 새로운 방사성 원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냄. 이 일로 1938년노벨물리학상을 받음.
● 오토 한(1879-1968):독일의 과학자. 1938년 중성자를 흡수한 우라늄은 질량이 큰 원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핵분열로 인해 질량수가 작은 두개의 원소로 변하는 사실을 발견. 즉 핵분열을 일으키는 사실을 알아냄. 이 일로 1944년 노벨 화학상 수상.
● 맨해탄 계획에 참여한 노벨상 수상자들
핵폭탄 제조를 목적으로 하는 맨해탄 계획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한마당이었다.
<퍼온 글>노벨상 수상자들의 한마당
핵분열을 이용해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은 사람은 질라드였다. 그는 불현듯 영국의 SF소설가인 허버트 조지 웰스(1866-1946)가 1914년에 발표한 ‘자유로워진 세계’(The World Set Free)가 생각났다. 이 소설은 엄청난 핵에너지를 이용한 핵폭탄이 개발되고, 1956년 영국, 프랑스, 미국 등과 독일, 오스트리아가 싸우는 세계대전에서 사용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만약 한과 슈트라스만이 히틀러와 나치스에 협력해 핵폭탄을 만든다면 유럽은 끝장이라고 질라드는 생각했다. 그러나 질라드로부터 자초지종을 설명들은 아인슈타인은 선뜻 협조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는 전쟁이 싫었고, 더구나 자신이 휘말리는 것은 더욱 싫었다. 그렇지만 질라드의 집요한 설득으로 아인슈타인은 1939년 8월 2일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히틀러보다 미국이 먼저 핵폭탄을 개발해야 한다고. 질라드가 염려했던 2차대전은 그해 9월 1일 일어났으며, 아인슈타인의 편지는 10월 11일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미국의 핵폭탄 개발인 맨해튼계획(정식 명칭은 맨해튼엔지니어구역)은 1941년 12월 6일에서야 시작됐다. 엄청난 비용이 드는데다가 자칫 실패하는 날에는 정치적 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루스벨트 대통령으로서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사이에 아인슈타인은 핵폭탄 개발을 촉구하는 편지를 두번이나 더 썼다. 맨해튼이란 이름은 당시 핵분열에 관한 연구가 주로 뉴욕 맨해튼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붙여진 것.
맨해튼계획의 책임자로는 놀랍게도 37세의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 교수인 오펜하이머(1904-1967)가 선정됐다.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한 로렌스(1901-1958, 1939년 노벨물리학상), 중수를 발견한 유리(1893-1981, 1934년 노벨화학상), 콤프턴 효과를 발견한 콤프턴(1892-1962, 1927년 노벨물리학상) 등 일찍이 핵폭탄 개발을 추진해왔던 명망가들은 모두 뒷통수를 얻어맞았다. 오펜하이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래비(1898-1988, 1944년 노벨물리학상)를 비롯해 핵폭탄 개발에 반대하는 수많은 과학자들을 맨해튼계획을 추진하던 뉴멕시코주 로스알라모스연구소로 불러들였다. 오펜하이머의 암호명은 ‘브래들리’.
맨해튼계획에는 나치스에 쫓겨온 유럽과학자들도 대거 참여했다. 독일 출신의 제임스 프랑크(1882-1964, 1925년 노벨물리학상)와 한스 베테(1906-, 1967년 노벨물리학상), 이탈리아 출신의 페르미와 세그레(1905-1989, 1959년 노벨물리학상), 헝가리 출신의 질라드, 노이만(1903-1957), 위그너(1902-1995, 1963년 노벨물리학상), 그리고 ‘수소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드워드 텔러(1908-).
특히 영국 과학자들의 활약은 돋보였다. 채드윅, 독일 출신의 클라우스 푹스(1912-1988, 전쟁이 끝난 후 소련간첩으로 체포돼 9년 동안 감옥에 갇힘) 등 상당수에 이른다. 닐스 보어와 그의 아들 아게 보어(1922-,1975년 노벨물리학상)는 영국팀의 고문 자격으로 참여했다. 핵폭탄을 가지고 싶었던 처칠이 1943년 8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계획하던 퀴벡 밀약에서 어떤 나라와도 핵폭탄을 공동개발하기를 원치 않았던 루스벨트를 굴복시킨 결과였다. 영국은 1952년 세계에서 3번째로 핵폭탄을 보유했다.
4천5백여명의 과학기술자들이 참여한 맨해튼계획은 노벨상의 등용문으로도 유명했다. 에드윈 맥밀런(1907-1991, 1951년 노벨화학상), 리차드 파인만(1918-1988, 1965년 노벨물리학상), 노먼 램지(1915-, 1989년 노벨물리학상) 등은 로스알라모스연구소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