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뒷부리도요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는 도요새는 한국 서해안이 중간기착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잘 알려진 새이다. 이 가운데 부리가 앞으로 굽어서 붙은 이름인 큰뒷부리도요는 가장 먼 거리를 비행한다. 한 해 3만5천km 이상을 비행을 하는 이 새는 ‘지구촌의 방랑자’라고 별명을 붙일 만하다.
미국의 지질조사국 연구자들이 큰뒷부리도요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위치 추적장치를 달았다. 그 결과, 이 새는 뉴질랜드와 호주 동부에서 북상하여 쉬지 않고 1만3천㎞를 날아 서해안에 들러 약 한 달 반 동안 영양분을 비축한 다음 또다시 서해안에서 알래스카까지 밤낮으로 6,500㎞를 날아갔다.
알래스카에서 번식을 끝낸 큰뒷부리도요는 여름과 가을 사이에 다시 남행길을 올라 한번도 쉬지 않고 17,000km를 날아 뉴질랜드와 호주 동부로 날아갔다. 이 기록은 사람들이 측정한 새들 가운데 가장 긴 비행기록이라고 한다. 제트여객기로 약 23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 이처럼 호주나 뉴질랜드로 날아갈 때 한반도 서해안에 들르지 않는 이유는 풍향을 이용하여 비행을 쉽게 하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장거리 비행을 하기 전 큰뒷부리도요는 갯지렁이 등의 영양분을 최대한 많이 먹는다. 무거우면 비행이 어려우므로 지방을 최대한 모으는 대신 내장을 줄여 몸무게를 가볍게 한다고 한다. 장거리 비행을 하고 나면 500g 정도인 이 새의 몸무게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보잉 747의 경우 중량의 45퍼센트가 연료 무게라 하는데 큰뒷부리도요의 경우 이보다 연료 비중이 높은 셈이다.
200시간 이상 8일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날면 잠은 어떻게 할까. 아직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철새들이 장거리 여행을 할 때 뇌의 절반씩 자는 방법을 쓰듯이 큰뒷부리도요새도 같은 방법을 쓰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또한 이같은 철새들은 몸 속에 있는 자성물질이 지구 자기장의 방향을 감지하는 나침반과 같아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야구팬 여러분 벌써부터 함성 소리가 귀에 아른거리시나요? 내일부터 한국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응원하는 팀은 어디인가요?
Take me out to the ball game! The Korea Baseball Organization (KBO) season starts tomorrow! What's your favorite team?
서천 장항갯벌 일몰
목은 이색 선생 시문 이정주 작가의 서화로 재구현
‘아헌 이정주 서화전’이 서천 문예의 전당 소강당에서 열리고 있다.(11.10-11.15)
목은 이색 선생의 詩文을 주제로 한 56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려말 중세 유학을 집대성한 목은 선생은 학자이자 정치가이며 시인이었다. 그는 정도전 정몽주 등의 제자를 길렀으며 조선시대의 성리학은 목은 선생을 조종으로 하고 있다.
목은 선생의 후손인 아헌 이정주 선생은
- 대한민국서예전람회 특선, 초대작가
- 강암서예대전 특선 3회, 초대작가
등 많은 공모전의 초대작가였으며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창암 이삼만 대한민국휘호대회 등 수많은 대회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서천의 서예가이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문인화, 화조도, 한국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리고 전서, 예서, 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원숙에 이른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목은 선생이 가신지 8년 후인 1404년(태종 4년)에 목은 선생이 남긴 시문을 모은 목은집(55권 25책)이 그의 아들 宗善에 의해 간행되었고 1972년에 이의 국역본이 나왔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모두 목은 이색 선생이 남긴 6천여 점의 시문 가운데에서 가져왔다.
가을이 다 가기 전 목은 선생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문학 세계를 아헌 이정주 선생의 서화로 감상해보시기를 권한다.
아래 사진은 목은 선생의 浮碧樓란 오언율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서천이 인구 6만도 안되는 촌이라구요? 천만에
봄 가을이면 도요새 수만 마리가 찾아오고
겨울이면 가창오리만 20만 마리 이상, 큰기러기, 청둥오리 등 겨울 철새들 10여만이 와서 사람들과 같이 삽니다.
금강하굿둑만 개방하면 우어 수십만 마리, 실뱀장어 수십만 마리가 몰려들어 사람들의 생활도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알락꼬리마도요
어제 장구만에서 본 알락꼬리마도요는 모두 5마리
왜 남쪽으로 가지 않고 여기서 머무는 걸까.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해진 것일까.
물이 빠지며 갯벌이 드러나자 먹잇감을 하나 포획했지만 갈매기의 텃세가 심하다.
뒷부리도요
바람이 몹시 부는 어제 판교천 하구에서 이놈을 만났다.
남쪽으로 안가기로 작정한 것일까.
몸시 추워 보인다.
체열을 보존하기 위해 다리 한쪽도 깃털 속에 숨겼다.
“한자로 기러기는 ‘雁(안)’인데 이는 ‘한 지붕 아래 사람과 새가 함께 산다는 뜻’으로 새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동반자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일본야생기러기보존협회 마사유키 쿠레치 박사>
동 트는 새벽
가창오리의 힘찬 날갯짓에 새 날이 동 터오길 빕니다.
갯벌은 만생명의 모태
바다로 들어간 땅끝 사람들 있고
육지로 파고든 바다끝엔 겨울 철새들
갈대가 그들 보며 지는 해 전송한다.
오목눈이
하천변의 갈대밭이나. 우거진 풀섶은 이들의 서식지.
흔들리는 갈대는 이들에겐 전신을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다.
직박구리
눈이 오면 새들은 먹이를 찾아 인가 근처로 온다. 산골 마을에서 꿩들도 집 마당까지, 노루는 정지간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옛 어른들은 이들을 절대 포획하지 않았다. 이들을 잡으면 동티가 난다고 했다.
이러다가 사람도 가창오리처럼 멸종위기동물 된다
수년간 금강호에서 가창오리를 보고 듣고 공부한 결과를 발표합니다.
<본관>
시베리아에서의 본관은 바이칼호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Vikal Teal'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북극해로 흐르는 레나강 유역에서 가족 단위로 생활하며 번식을 하면 새끼들을 데리고 바이칼호에 집결합니다. 10월이 되면 선발대가 먼저 중국, 한반도, 일본 등지로 월동을 위해 출발합니다.
한반도에서의 본관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입니다. 그래서 ‘가창오리’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이 많이 살게 되어 안전에 위협을 받게 되자 지금은 천수만, 금강호, 해남의 고남저수지 등지에서 월동을 합니다.
<사람을 가장 무서워 한다>
모든 새들에 해당되지만 가창오리는 특히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지역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금강호에서 안전거리는 50m 정도입니다. 한번은 가창오리 무리가 금강호변으로 서서히 접근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갈밭에 몸을 숨긴 채 엎드려 미동도 하지 않고 카메라를 조준한 채 기다리고 있었는데 50여미터쯤 다가오자 ‘턱’하는 소리와 함께 일시에 날아오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앞줄부터 순차적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고 맨 뒤까지 일시에 수면을 박차고 날아올랐습니다. 그 단체 행동이 경이로웠습니다. 이로 보아 이들에게는 사람 얼굴 형상이 각인이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창오리를 관찰할 때는 절대 가까이 가면 안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먹이활동은?>
야행성 동물을 제외하면 모든 동물들은 낮에 먹이활동을 하고 밤에는 쉬지만 가창오리는 반대입니다. 낮에는 안전한 호수 한가운데에서 쉬다가 해질 무렵이면 인근 논으로 출근을 합니다. 논에 떨어진 낙곡이 이들 주식입니다. 먼 거리를 이동해온 직후에는 좀 일찍 출근을 합니다. 그러나 배가 좀 부르면 어둑어둑해져야 출근을 합니다. 밤에 출근을 하는 것도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동이 터오르면 다시 호수 한가운데로 퇴근을 합니다.
<단체행동>
이들은 수천마리에서부터 수만마리, 수십만 마리씩 단체행동을 합니다. 출퇴근시 호수 위에서 한바탕 군무를 춥니다. 그러나 한번도 서로 부딪히는 일이 없이 깻잎 한 장 차로 비껴갑니다. 이처럼 많은 개체들이 있는데 한국에서 멸종위기2급동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한 집단을 한 개체로 본다는 것입니다.
<가창오리가 안오는 이유>
먹이가 부족하고 안전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4대강사업으로 호숫가에 생태공원을 만든다며 여러 시설물들을 해놓았습니다. 본래 이곳은 하천부지로 논이었습니다. 이러한 완충지대가 사라진 것입니다.
다양성협약에 따라 정부는 볏짚을 논에 존치하면 보조금을 주는데 사료용으로 파는 것이 돈을 더 받기 때문에 볏짚존치를 하는 농가가 별로 없습니다. 들판에 가면 하얗게 말아놓은 것이 볏짚입니다.
올해 천수만에 수천마리가 나타났다가 다시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들었습니다. 기온에 따라 천수만에서 금강호, 해남 고남저수지 등지로 오르락 내리락 하며 겨울을 지내고 3월말이나 4월초에 시베리아로 돌아갔는데 올해에는 12월이 됐는데도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과 가창오리가 공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도 멸종위기동물이 될 것입니다.
(사진은 재작년에 찍은 것입니다.)
달과 지구 사이 수만년의 바다가 흘렀을 것이다
천 갈래 만 갈래 살아 넘치는 바다
바람 자면 저물어 멀리 야위는 바다
밀물과 썰물 사이 수만년 산 것들이 물길을 열었을 것이다
갯벌에
강물에
댕기물떼새 한 마리 기진한 허공을 내려와
뻘 한 점을 물고 있다
<박영근 '물때' 부분>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는 선거의 4원칙이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피를 흘렸다. 1838-1848 영국에서 노동자들이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 운동이 차티스트 운동<아래 사진>이다. 1848년 프랑스 2월혁명에서 비로소 돈 많은 사람이나 없는 사람도 똑같이 1표씩을 갖게 되었다.
박정희의 유신선포는 직접선거를 앗아갔다.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란 기구를 통해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은 것이다. 1987년 전두환 시절 다시 직접선거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최루가스를 마셔야 했던가.
평안한 연말 되소서
<화양 들판>
큰기러기
볏짚 말아놓은 것을 걷어내자 큰기러기들이 먹이를 찾아 몰려왔다.(서천군 서천읍 근처)
볏짚말이는 이들에게는 장애물이다. 촘촘히 늘어선 볏짚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이들 일부라도 치워놓는 배려가 아쉽다.
할미섬
밀물과 썰물, 한여름의 폭염과 북풍한설, 강한 폭풍우 견디며 수만년을 파도에 씻기며 저렇게 살아왔다.
꽁꽁 언 금강호
금강호 전체 수면이 꽁꽁 얼어붙었다.
청둥오리 한마리도 안보인다.
낙동강에선 이처럼 보로 가두어 모래톱도 수면에 잠기고, 물이 얼어붙어 수백마리 큰고니들이 아사직전이라 한다.
부여 내산면으로 거처를 옮기신 송모세 목사님이 서천을 방문하셨다.
점심식사후 금강하구갯벌에 들렀더니 꼬마물떼새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금강하구 큰고니
낙동강에서 얼음에 갇힌 큰고니 140마리가 아사직전이라 한다. 저수지마다 꽁꽁 얼어붙고 먹을 것도 없어 서천에 아ㅖ 보이지 않더니 오늘 금강하굿둑 아래에서 3마리를 목격했다. 하국둑이 없었던 옛날에는 큰고니들이 떼로 날아들었다 한다. 서해로 흐르는 강들 실개천까지 다 막혀있다. 해수를 유통시켜 기수역을 복원하면 물고기들이 많아지고 이를 먹이로 하는 새들도 많이 온다. 바다 어장도 어족자원 되살아난다. 해수유통이 살 길이다.
큰기러기
요즘 화양 들판에 큰기러기들 수가 좀 늘어났다. 날이 하도 추워 천수만에 있던 것들이 남하해온 것이라고 여길욱님이 일러줬다. 이 기러기들은 한글을 잘 아는데 한자는 모른다. 기러기 雁자는 집울안에 사람이 새와 함께 공존하다는 뜻이라 한다.
마도요
어제 갯벌에서 마도요 두마리가 노는 모습을 보았다. 왜 호주로 가지 않았을까. 힘이 없어 못간 것일까. 이 추위를 견디는 것을 보면 강단이 있어보이는데....
겨울에도 먹이 확보에 자신이 있어서일까.
혹부리오리
물김 세척한 물이 흘러드는 이 갯벌은 혹부리오리가 주인이다. 큰기러기는 논에서 농사를 지을 때 사람이 오나 안오나 꼭 보초를 세우는데 혹부리오리는 사람이 지나다녀도 신경도 안쓴다. 이 동네 어르신들도 저 새 이름을 모른다. 그냥 오리라고 할 뿐 별 관심 없다. 이들이 떠나고 나면 이 갯벌은 도요새들 차지이다. 이들이 있어 심심하지 않다. 오래오래 사람과 공존해야 하는데 못믿을 건 사람이다.
논으로 간 큰고니
내륙습지가 얼어붙자 큰고니들이 서천 들판에 나타났다.
모두 136 마리를 확인했다. 어디에 있다가 온 것인지 모르겠다.
큰고니들이 찾은 논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볏짚을 말아 내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주된 먹이는 수초 뿌리인데 볏짚 아래에 뭐 먹을 게 있는지 잘 모르겠다.
금강하구 토사퇴적
1991년 금강하굿둑이 완성된 이래 계속 토사가 쌓여 장항항의 항구기능이 마비되다시피했다. 어선들도 만조때에만 겨우 드나든다. 군산쪽에서는 군산내항이 어항으로만 사용되다 2006년에는 비응항으로 옮겨갔다. 토사는 아무리 준설을 해내도 1년반이면 원상태로 돌아간다. 한번 준설하는 데 30~40억원씩 들어간다. 밀물이 토사를 몰고와서는 슬그머니 부려놓고 나간다. 왜가리의 긴 다리가 푹 파묻힐 정도이다.
쇠기러기
새들은 사람을 가장 무서워한다. 이는 사람에게서 받은 수난을 말해주는 것이다. 애써 곡식을 심어놓으면 새들이 다 파먹으니 사람으로서도 할말은 있을 것이다.
추수가 끝난 겨울 빈 논에서는 기러기들이 농사를 짓는다. 떨어진 이삭이나 볏짚에 붙어있는 벌레 등을 먹는다.
논길을 가다 기러기 떼를 보면 차에서 내리지 말아야 한다. 사람 얼굴을 보면 다 날아간다. 자동차도 100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사진찍겠다고 접근하는 사람은 아주 무식한 사람이다.
새들은 날기를 싫어한다. 괜히 한번 날면 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이다. 낟알을 수백개는 먹어야 한번 나는 에너지를 충당할 것이다. 사진은 오늘 논길을 가다 만난 쇠기러기들이다. '쇠'자 들어가는 새들이 참많다. 쇠오리, 쇠백로, 쇠청다리도요, 쇠물닭 등등. '小'자의 의미라 한다.
이곳은 금강호 둔치로 본래 논이었다. 벼를 베고나면 보리나 밀을 심었다. 4대강 한다고 싹 밀어내고 위쪽으로는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대충 땅을 고르게 하여 생태공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를 방치해 두자 다시 갈대가 자라고 웅덩이가 곳곳에 패어 자연상태로 되돌아갔다. 오늘 보니 눈이 녹으면서 청둥오리와 큰기러기들의 훌륭한 서식지로 다시 변해 있다. 제발 이대로 방치해 두기를 빈다.
靈이 있어 뭔가 외치고 있는 모습이다.
<지리산 천왕봉 부근>
명품이란 이런 것
기산면 내산정리 최낙환씨가 만드는 곶감이다. 지난 여름 모진 태풍에도 살아남아 가을햇볕을 듬뿍받더니 사람의 손에 의해 명품으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영하 십 몇도를 오르내리는 한파속에서 산들바다의 기운을 흡수하여 아침 햇발을 받으며 찬연히 빛나고 있다. 그 어떤 화학물질도 들어가지 않았다. 과연 호랑이가 보고 도망갈 만하다. 인산 김일훈은 한반도 상공에 감도는 정기를 받은 우리 땅의 식물이 약리성분이 가장 높다 하였다. 값이 헐한 중국산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굿둑을 열면 참게가 돌아온다
조선시대에 참게는 강원도를 제외한 7도 71개 고을의 토산물이었다고 한다. 서해로 흐르는 크고 작은 하천 유역, 특히 바다에 가까운 민물에서 성장하며, 가을철에 산란하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다. 기수역을 오르내리며 사는 것이다. 짠물이 섞인 기수역에서 산란, 포란하고 부화한 다음 어린 참게는 다시 민물로 올라와 성장한다.
참게는 갑각길이 63㎜, 갑각너비 70㎜ 내외의 비교적 큰 게이다. 갑각은 둥그스름한 사각형이고 이마에 4개의 이가 있으며 집게다리는 억세게 생겼고, 손바닥의 앞면과 손가락 기부에 연한 털다발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남긴 <자산어보>에서는 참게를 ‘천해(川蟹)’라 하고 “큰 것은 사방 3∼4치이고, 몸빛은 푸른검은색이다. 수컷은 다리에 털이 있다. 맛은 가장 좋다. 이 섬의 계곡 물에 간혹 참게가 있으며, 내 고향의 맑은 물가에 이 참게가 있다. 봄이 되면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 논두렁에 새끼를 낳고 가을이 되면 하천을 내려간다. 어부들은 얕은 여울에 가서 돌을 모아 담을 만들고 새끼로 집을 지어 그 안에 넣어두면 참게가 그 속에 들어와서 은신한다. 매일 밤 횃불을 켜고 손으로 참게를 잡는다.”고 하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의 <전어지>에도 수수를 매달아 게를 잡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 순조 때 나온 가정 살림에 관한 내용의 책 <규합총서>에도 여러 곳에 게를 다루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민간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궁중에서는 10년 이상이 된 참게를 궁중 간장에 담가 여러 번 장물을 달여 부은 참게장 속의 노란 창자를 전투중 뼈가 상하고 힘줄이 끊어진 장졸들의 상처회복을 위해 먹였다 한다.
이처럼 참게는 기수역이 많이 분포한 한반도에서 오랜 옛날부터 가장 흔한 종 가운데 하나였으며 참게장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먹을거리 문화였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한강 하류와 인접한 경기도 파주 게가 유명하여 한때 파주군에서는 참게의 통조림을 만든 적이 있고, 1934년 8∼10월에는 41만 4000여 개체가 잡혔다 한다.
금강하류에서도 참게가 참으로 많이 잡혔다. 논산, 익산, 부여, 공주 일대의 금강 지류에서 자라는 참게들은 알을 낳을 때면 모두 금강하류로 몰려들었다. 조수가 닿는 논산 강경에서부터 장항 원수리 일대까지의 갈대밭은 참게의 산란장이었다.
“어릴 때 아버님이 논에 피사리하고 오실 때면 참게를 열 마리 정도 묶어서 가지고 오셨지요. 농수로에 버글버글 했던 것이 참게였습니다.”
시초면에서 태어나 자란 50대 고 아무개씨의 말이다. 서천 사람들은 이러한 참게로 참게장을 담가 먹는 문화가 어느 고장보다 성행했다. 참게장은 간장게장의 대표이다. 가을 생식기에 암놈의 등딱지 속에 단맛이 나는 장이 드는데 이 때가 맛이 가장 좋다. “정월 게는 소가 밟아도 안깨진다”는 말이 있지만 봄게는 맛이 없다.
참게장의 백미는 장이다. 게딱지 속에 들어있는 된장처럼 누르스름하게 생긴 부분을 장이라 하는데 실제로는 게의 생식소다. 가을이 되면 양이 많아지고 맛도 좋아진다. 장이 좋은지의 여부는 보통 빛깔로 따지는데 황장, 녹장, 흑장으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노란 빛이 감도는 황장이 맛이 고소하하며 최고로 친다. 색이 짙어질수록 쓴맛이 돈다. 장을 다 파먹고 남은 껍데기에 밥을 비벼 김을 얹어먹는 맛 또한 일품이다.
게를 창자가 없다 해서 ‘무장공자(無腸公子)’라고도 부른다. “창자 없는 게가 참으로 부럽도다 / 한평생 창자 끊는 시름 모른다네”라는 싯구가 전해오기도 한다. 게들은 알을 뿜으면 내장이 다 빠지고 알만 가득 차있다. 그러나 참게는 다르다. 알을 품고 있으면서도 창자는 창자대로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디스토마의 중간숙주로 꺼려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 참게는 70년대 들어 논에 농약을 치면서부터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특히 금강하굿둑이 생겨 기수역이 사라지는 바람에 이제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화양 망월리에서 장항 원수리까지 갈밭에 득시글거리던 참게들은 애잔한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간혹 하굿둑 아래에서 옛 모습
댕기물떼새
오늘은 논으로 나투셨다.
큰기러기의 유영
만조가 되어 금강하구에 물이 꽉 들어찼는데
왼갖 오리과 족속들이 놀고 있었다.
그 가운데 기러기목 오리과의 종손 큰기러기가 돋보인다.
논에서 떼를 지어 인간들이 흘린 낙곡이나 주어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이토록 기품있는 모습은 처음 본다.
과연 기러기목 종갓집 후손이다.
절도있는 큰기러기
수백마리씩 단체행동을 하는 큰기러기 무리에게는 리더가 있다. 리더는 하늘을 날 때에도 최 첨단에서 무리들을 이끌고, 논에 내려와서도 동료들이 먹이활동을 안심하고 할 수 있도록 망을 본다. 유심히 들여다 보면 망을 보는 녀석들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바뀌는 것으로 보아 리더 역할도 번갈아가며 하는 것 같다.
논에서 먹이활동을 할 때에도 절도가 있다. 이 논배미 저 논배미 무질서하게 흩어져 먹이를 먹지 않고 김씨네 논배미를 다 끝내면 다음 나절에는 이씨네 논배미... 이런 식이다.
이들이 다녀간 논에서는 풍년농사가 된다고 한다.
금강호 풀리다.
꽁꽁 얼어붙었던 금강호 얼음이 풀리면서 청둥오리 등 철새들이 금강호에 다시 돌아왔다. 저 하굿둑이 없었을 때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기수역으로 얼음이 얼지 않았다.
서해로 흐르는 강들은 모두 저와 같은 둑으로 막혀있다. 서천군은 금강하구 재자연화를 위해 군산시와 '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의했다고 31일 서천군청은 밝혔다.
4대강에서 댐으로 토막낸 강들이 겨울에 얼어 겨울 철새들이 갈곳이 없는 상태이다. 생명의 강으로 복원하는 일이 앞으로 할 일이다. 4대강 댐들을 철거해야 한다.
무나물 요리
땔감을 아끼느라 아궁이에 불을 많이 땔 수 없었던 옛날, 설이 다가오면 울목까지 쩔쩔 끓는다. 그믐날 밤 절정에달한다. 장작불을 때면서 엿을 고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신이 나는 일이다. 엿단지가 있어 정월 보름까지는 매사가 즐겁기만 하다. 그러나 어머니 몰래 엿을 한 숟가락씩 퍼 먹으면 속에서 불이나기 마련이다. 이때 먹었던 것이 무나물이었다.
<재료>
- 무 1개(무도 미끈하게 다들 잘생겼다. 무는 땅속에서 돌면서 큰다고 한다)
- 멸치 10마리(잔멸이나 대멸보다는 중멸이 좋다)
- 마늘 다진 것 조금
- 양파 반토막 잘게 썰은 것
- 파래 조금(본래는 청각을 넣는데 요즘 청각은 귀해서 파래를 넣었다)
<요리 방법>
- 무를 되도록 가늘게 채 썰어 위 준비한 것들을 큰 냄비에 넣고 물을 붓는다.무 자체에 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물의 수위가 무보다 높으면 안된다.
- 센 불에 가열을 한다.펄펄 끓을 때 죽염으로 간을 맞춘다. 아주 싱겁게 간을 맞추어야 한다.
<특성>
- 무는 냉한 성질이고 마늘 양파는 뜨거운 성질이어서 음양의 궁합이 맞다. 전체적으로 냉한 음식이다. 겨울철 열이 오른 속을 다스린다.특히 술꾼들 아침 속푸는 데 그만이다.
- 무를 채썰줄만 알면 누구나 쉽게 요리할 수 있다.
<먹는 방법>
- 냉장고에 넣지 말고 베란다 차가운 곳에 두고 속이 뜨거울 때 한그릇씩 퍼다 먹으면 된다.
책소개 <새만금사업과 어민들>
2006년 4월 새만금방조제 끝물막이 공사가 끝난지 7년이 되어갑니다. 그동안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갯벌이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큰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어족자원의 산란장이 사라졌고 수많은 기수역 어종이 사라졌으며 방조제 밖에서도 어장 황폐화로 이어져 연안어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조류 흐름이 느려져 곳곳에 토사가 쌓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새만금갯벌 부근 뿐만이 아닙니다. 충남 서천에서도 어민들은 “새만금 막은 뒤로 고기 안잡힌다”는 말을 합니다. 이와 더불어 방조제에 갇힌 포구 마을들은 유령마을이 돼버렸고 마을공동체는 급격히 해체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전북대 문화인류학과 함한희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이러한 변화를 살펴보고 책으로 냈습니다. 새만금사업에 다시 관심을 쏟아야 할 때라고 생각돼 소개합니다.
갯바람이 매섭다.
그런데 웬일인가
판교천 수문 근처에
청다리도요 한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남극과 북극을 오르내리는 긴긴 유목생활을
이제 마감하려는 것인가.
추위에 먹이를 제대로 못먹어서인지
비쩍 말라있다.
위어 사진
2008년 3월초 금강하구 실뱀장어잡이에 따라 나섰다가 그물에 걸려온 놈을 만났습니다. 길이는 20센티 안팎. 젓가락 길이만 합니다.
"나도 이 갯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지!"
눈 뒤의 검은 반점으로 보아 붉은부리갈매기이다.
겨울철새이나 8월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큰기러기들이 모여 있다.
이들이 떠날 날이 얼마 안남았다.
언제 떠날지 회의를 하는 것일까.
김종규 어르신 증언
"저런 깡통이 나온 것은 미군이 들어온 뒤야. 옛날에는 깡통이란 것이 없었어. 그래서 우리 어릴 때는 대빗자루로 했어. 마당 쓰는 대나무로 만든 빗자루... 우리집 것이건 남의 집 것이건 보이는 대로 들고 나와 불을 붙여 돌리고 내달리고, 이웃 마을과 불싸움 하고.... 이튿날 아침이 되면 집집마다 어머니들 대빗자루 없어졌다고 난리가 나. "
-마산면 이사리 '기벌포대보름제'에서-
항일독립투사 백정기
“슬프도다 동포여! 선열은 이같이 장엄하였거든 우리는 어찌 우리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선열의 뜻을 받들어 보답하지 못하였는가”
<김구 선생의 '삼의사를 반장하고' 중에서>
http://buan21.com/bbs/view.php?id=buan21&no=6051
봄까치풀
이란 이름이 있는데도 큰개불알풀로 더 알려져 있다.
나물로도 먹고 꽃은 따서 그늘에 말려 차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통화목 현삼과 두해살이풀.
별꽃
밭둑길을 가다보니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게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춰보니 코딱지보다 작은 꽃이었다.
별풀이다.
여러 약재로도 쓰이고 봄나물로도 훌륭하다고 한다.
불암폭포
불암산에 이런 폭포가 있다.
비참한 큰고니
올해엔 이런 모습조차 안보인다.
물닭
봄볕 나리는 연방죽
물닭 한쌍 놀고 있다.
헤험도 잘 치지만 자맥질에도 고수
땅에서 걷기도 하고
드높은 창공을 날기도 한다.
자기가 속한 환경 파괴하지 않고
다른 종들과 평화롭게 살아가니
사람보다 훨씬 고등동물
벼슬이 빠알간 쇠물닭도 있다.
금강하구 흰뺨검둥오리
조선 노인의 기개
서울역앞 광장에 2006년도에 세운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서있다.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부릅뜬 두 눈, 손엔 폭탄을 거머쥐고 있다.
3.1운동으로 일격을 맞은 일제는 10년간 무단통치를 하던 데라우치 총독을 경질시키고 해군대장 출신 사이토를 임명했다.
1919년 8월 12일 도쿄에서 임명식을 치르고 교토를 거쳐 부산에 당도한 것은 8월 31일. 총독암살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첩보가 곳곳에서 날아들었다.
사이토 일행은 마중나온 이완용 등과 함께 9월 2일 오전 7시 부산을 출발했다. 출발시간도 급히 바꿨다 한다.
서울역에 도착하자 예포 17발이 울려퍼졌다. 이어 강우규 의사가 던진 폭탄이 작렬했다. 예포가 계속되는 줄 알았다 한다.
누군가 외쳤다. "폭탄이다"
무라다 육군소장, 혼마치 경찰서 서장 고무다, 만주철도 이사장 구보 등이 파편을 맞고 중경사을 입었다. 혼비백산한 사이토는 줄행랑을 치기에 바빴다. 그는 일부러 총무국장의 인력거와 바꾸어탔다고 한다.
부임하는 총독에게 폭탄 선물을 안긴 강우규 의사는 유유히 사라졌다가 15일 후인 9월 17일 2차 거사 준비중 종로구 누하동에서 체포됐다.
이때 강우규 의사의 나이는 환갑진갑을 다 넘긴 65세의 노인이었다. 평안도 덕천 출신인 그는 고려때 거란을 몰아낸 강감찬 장군의 후손인가. 진주강씨이다.
(이상 월남 선생 자료 찾다 알아낸 사실. 이제서야 이 사실을 알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작은개불알꽃?
풀잎 위에 하얀 좁쌀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크기가 들깨만큼이나 작다.
꽃의 최대 직경이 1mm나 될까.
잎은 큰개불알풀(봄까치풀)과 거의 같다.
포토숍으로 확대를 해서보니
아름다운 자태가 드러난다.
꽃잎은 연분홍이다.
작은개불알꽃이라 해야하나.
돌연변이종일까.
작은개불알풀을 검색해보니 없다.
지금가지 본 것 중 가장 작은꽃이다.
이걸 학계에 보고를 해야 하나.
동백나무
지난 토요일 비인면 율리(밤나무골) 산기슭에서 생강나무를 만났다. 동네 어르신에게 무슨 나무냐고 물었더니 동백나무라고 대답하셨다.
"저 열매로 기름을 짜는 데 그게 동백지름이여."
강원도에서만 동백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흔전만전했던 주꾸미가 귀하신 몸이 된 이유
박정희 대통령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는 그의 집권 18년 동안 지속적으로 갯벌을 논으로 만드는 간척사업을 벌여왔다. 그는 일제가 1917년에 만들었던 공유수면매립법을 부활시키고 1963년 3월에 동진방조제 사업을 착공했다. 부안군 동진면 문포와 하서면 의복리에서 계화도를 잇는 두 개의 방조제를 축조하여 3968ha의 갯벌을 매립하여 2500ha의 농지를 만드는 사업이었다.
1970년대 들어서는 강 하구를 틀어막는 간척사업이 벌어졌다. 안성천과 삽교천 하구를 틀어막는 아산만 방조제와 삽교천 방조제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1979년 10월 26일 삽교천 방조제 기공식에 참여하고 서울로 돌아온 박정희는 그날 저녁 김재규의 총탄으로 장기 독재체제를 마감했다. 18년 개발독재는 갯벌파괴로 시작해서 갯벌파괴로 끝난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
그는 현대건설이 청계천 복개공사에 참여하여 동대문 오간수다리에서 제2청계교까지 공사를 진행하던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이후 1977년에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이 되었으며 1988년에는 현대건설 회장이 되었다. 그가 1992년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단 한번도 현대건설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동안에 그는 서산지구 간척사업 외에도 영산강2지구(1978~1982), 낙동강하굿둑(1983~1987), 시화지구(1987~1996) 등의 간척사업을 벌여 세계5대 갯벌 가운데 하나인 한국 서해안갯벌을 파괴하는 중심에서 일을 해왔다. 그가 대통령이 돼서는 동서남해안개발특별법을 만들어 한반도 전 해안을 콘크리트로 바르다가 물러났다. 지금도 서해의 자연해안선은 사라지고 있고 갯벌은 파괴되고 있다.
요즘 한양 사람들
한양성곽길 도보 순례여행이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1천만 인파 속에 18km 둘레길이의 성곽 일부가 남아있어 이 길을 따라가며 회고에 젖어보는 테마여행인가보다. 그러나 한양성 성곽여행도 좋지만 비무장 지대에 고스란히 묻혀있는 궁예도성을 상기하고 남북 공동으로 이의 복원을 논의할 때다.
2009년 8월 언론재단 주최의 비무장지대 여행에 참여해 철원에 있는 철원평화전망대에서 발 아래 궁예도성을 내려다 본 일이 있다. 다음은 그 때 쓴 글 일부이다.
--------------
강원도 평강의 남쪽 오리산(鴨山:458m)에서 20-30만년 전에 화산활동으로 인한 용암분출이 있었다. 유동성이 강한 현무암이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렸다. 용암은 낮은 골짜기부터 메우면서 철원·평강 용암대지를 형성하게 되었다. 용암은 한탄강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 파주시 문산에서까지 현무암 층이 발견된다. 이같은 용암대지 위에 형성된 비옥한 들판이 철원평야이다. 평균 해발고도는 300m 정도이고 넓이는 약 7만ha 정도로 새만금 방조제 안의 바다 면적의 거의 두배에 달한다. 지평선이 보인다.
1200여년 전 신라 말의 풍운아 궁예는 이곳에 도읍을 정했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청주인 1천여 가구를 이곳 철원으로 이주시켜 도성을 쌓게 하였다. 오리산을 진산으로 삼아 그 아래에 둘레 13.5km의 성곽을 둘렀다. 궁예도성이라 부르고 있다. 조선조의 한양성이 18km임에 비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폭 4km의 비무장지대 안에 비스듬히 온갖 덩굴식물 아래 고스란히 묻혀있다.
이를 단 1년만에 쌓았다 한다. 제주도에서처럼 구멍이 숭숭뚫린 돌들이 흔히 나뒹구는 것을 보고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생각했다. 화산가스가 빠져나가 무게가 가벼운 현무암으로 성곽을 쌓은 것이다. 철원에서는 이 돌을 멍돌이라 부른다.
왕건의 해군과 자신의 육군을 활용하여 수륙병진정책을 펴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려 했던 궁예, 왕건의 배신으로 대세가 기울었지만 경순왕이나 견훤처럼 왕건에게 투항하지 않았다.
“나는 안 망해, 돌에 좀이 슬기 전에는 안 망해. 갑자기 “쉿, 쉿”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궁궐 안팎 크고 작은 돌마다 좀이 슬듯 뻥뻥 돌가루를 쏟아냈다.“
멍돌은 이렇게 해서 생겼다는 전설이다.
왕건에 쫓기던 궁예는 군대를 해산하고 통곡하는 군사들의 울음을 등진 채 홀로 명성산으로 들어갔다. 그를 따르던 군사들의 울음으로 인해 이름이 붙은 신철원 갈말읍에 있는 산이다.
한탄강에 이르러 궁예는 군사들에게 “나를 따르지 말라”며 홀연히 사라졌다. 그곳이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이다. <고려사>에서는 궁예를 포악하고 비정상적인 성격의 군주로 그리고 있지만 철원 토박이들은 ‘궁예왕’ 또는 ‘궁예대왕’으로 모시고 있었다.
---------
“소양강 내린 물이 어드러로 든단 말고, 고신 거국에 백발도 하도 할샤. 동주 밤 계오 새와 북관정의 올라하니, 삼각산 제일봉이 하마면 뵈리로다. 궁왕 대궐터희 오작이 지지괴니, 천고 흥망을 아난다 몰아난다.”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받고 강원도를 순례한 기행문인 <관동별곡>의 일부이다. 조선 중기 때만해도 궁예도성은 비교적 보존이 잘 돼 있었을 것이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지난 28일 서천에 들러 서천군농민회와의 감담회 자리에서 경직된 남북관계를 푸는 길이 뭐냐는 질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북에 특사를 보내는 일”이라 답했다. 남과 북이 만나 대화를 하고 평화를 말하며 남북 공동소유인 궁예도성을 함께 복원한다면 민족동질성이 한층 회복되지 않을까.
<철원평화전망대에 있는 궁예도성 부근 모형>
청다리도요
서천갯벌에 도요새들이 찾아오고 있다.
호주에서 논스톱 비행으로 5~6일동안 잠도 자지 않고 와서 피곤할 것이다.
이 청다리도요는 걸어가면서 잠을 자는 것일까. 아니면 눈을 깜박이는 순간 포착을 한 것일까.
큰뒷부리도요
도요목 도요과의 도요새들은 5, 6월경 북극에 가까운 지방에서 산란을 하며 월동을 하기 위해 호주나 뉴질랜드까지 먼 거리를 이동한다. 중간에 이들은 한국의 서해안 갯벌에 들러 한달 반 가량 머물며 쉬었다 간다. 이처럼 서해 갯벌은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는 도요새들의 중간 기착지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도요새들 가운데 큰뒷부리도요는 가장 먼 거리를 비행한다. 한 해 3만5천km 이상을 비행을 하는 이 새는 ‘지구촌의 방랑자’라고 별명을 붙일 만하다.
미국의 지질조사국 연구자들이 큰뒷부리도요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위치 추적장치를 달았다. 그 결과, 이 새는 뉴질랜드와 호주 동부에서 북상하여 쉬지 않고 1만3천㎞를 날아 우리나라 서해안에 들러 약 한 달 반 동안 영양분을 비축한 다음 또다시 서해안에서 알래스카까지 밤낮으로 6,500㎞를 날아갔다.
알래스카에서 번식을 끝낸 큰뒷부리도요는 여름과 가을 사이에 다시 남행길에 올라 한번도 쉬지 않고 17,000km를 날아 뉴질랜드와 호주 동부로 날아갔다. 이 기록은 사람들이 측정한 새들 가운데 가장 긴 비행기록이라고 한다. 제트여객기로 약 23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 이처럼 호주나 뉴질랜드로 날아갈 때 한반도 서해안에 들르지 않아도 되는이유는 풍향을 이용하여 비행을 쉽게 하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장거리 비행을 하기 전 큰뒷부리도요는 갯지렁이 등 영양분을 최대한 많이 먹는다. 무거우면 비행이 어려우므로 지방을 최대한 모으는 대신 내장을 줄여 몸무게를 가볍게 한다고 한다. 장거리 비행을 하고 나면 500g 정도인 이 새의 몸무게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보잉 747의 경우 중량의 45퍼센트가 연료 무게라 하는데 큰뒷부리도요의 경우 이보다 연료 비중이 높은 셈이다.
밤낮 쉬지 않고 날면 잠은 어떻게 할까. 아직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철새들이 장거리 여행을 할 때 뇌의 절반씩 자는 방법을 쓰듯이 큰뒷부리도요새도 같은 방법을 쓰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또한 이같은 철새들은 몸 속에 있는 자성물질이 지구 자기장의 방향을 감지하는 나침반과 같아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들 도요새들은 한국의 서해안을 이용해 왔다. 도요새는 갯벌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갈매기나 오리들과 같은 물갈퀴가 없어 헤엄을 치지 못한다. 썰물 때 갯벌이 드러나면 종종거리며 갯지렁이나 칠게 등의 먹이 사냥에 나섰다가 물이 들면 배후지로 물러난다. 그런데 서해안 개발로 인해 갯벌 면적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밀물 때 물러나 안전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도요새들에게 인간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침입자로만 보일 것이다.
<책소개>
탐욕’이 부른 파멸…‘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자
이정아 작가 ‘섬 소년’ 발간
그 섬에 정신지체 장애인 수용 시설인 애심원이 들어온 후부터 섬 마을에 파란이 일었다. 주인공인 초등학교 4학년 용태의 아버지는 뱃일을 그만 두고 애심원에서 일을 하게 됐다. ‘장애인들의 천국’으로 언론에 보도된 애심원은 천국이 아니었다. 원장은 나라에서 지급하는 지원금을 착복했고 장애인들은 소금밭에서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며 섬마을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이와 연루돼 수감됐고 어머니마저 육지로 나가 소식이 없다. 희귀 철새들을 보러 오는 탐조객들을 실어나르며 근근히 살아가는 반장 아저씨와 함께 생활하게 된 소년의 하루 일상에 무너져 내린 섬마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새 사진을 찍겠다며 폐염전지대를 휘젓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위험하다며 훠이훠이 몰아내는 박선장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육지사람들과의 괴리감이 묻어난다.
그 섬은 서천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린다. 작가 이정아는 그 섬에 가서 폐교를 앞둔 학교 운동장에 나뒹구는 슬리퍼 한 짝을 보고 그 슬리퍼에 담긴 이야기를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 슬리퍼의 주인공이었을 소년은 애심원을 둘러싼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어머니는 반드시 선물을 안고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애심원이 불러들인 돌이킬 수 없는 결과들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 70여쪽 분량의 작은 동화이지만 탐욕과 함께 파멸로 치닫고 있는 어른들의 세계를 고발하는 큰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작가는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과 함께 만화가이자 일러스트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건웅의 굵직한 선의 그림이 전편에 실려 있다. 박건웅은 한국 현대사를 다룬 장편 만화 ‘꽃’과 ‘노근리 이야기’를 낸 작가이다. 그는 '섬소년'을 읽으며 까마득하게 잊었던 지난 시절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전한다. 그 소중한 얼굴들, 지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정아 작가는 장항에서 나고 자랐으며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서천의 작가이다. 현재 서천에서 살고 있다. 도서출판 <해와나무>에서 지난 4월 5일에 발행됐다. 정가 8800원.
(이 글은 뉴스서천 4월 15일자에 실렸습니다)
참새
새들 가운데 예로부터 이 땅에서 사람들과
가장 많이 부대끼며 사는 새가 참새일 것이다.
1년 열두달 참새는 우리 곁에 있다.
그러니 탐조객들의 관심을 끌 리도 없다.
들판에 벼가 익어갈 무렵
학교 갔다 오면 어머니는
"논에 가서 새 보고 오라"
는 일을 맡기셨다.
새 쫓는 일이었지만 어른들은
야박한 표현을 하지 않았다.
바로 그 대상인 새가 참새이다.
노희두 열사 추모제
1960년 4.19혁명.
당시 동국대학교 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2세의 젊은이 노희두(1939년) 열사.
계엄령 선포와 발포명령에 따른 첫 총탄의 희생자다.
그는 서천초등학교와 서천중학교, 장항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서천의 인물이다.
19일, 그의 53주년 추모제가 모교인 서천초등학교에 있는 노희두 열사 기념비 앞에서 낮 12시에 열린다.
추모제는 동국대학교 서천동문회(회장 김기수)를 비롯해 장항농업고등학교 동문, 서천초 동문 등이 주관한다.
김기수(76. 서천읍 사곡리) 회장은 “이날 추모식에 노희두 열사에 대한 많은 지역민들의 관심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 서울 수유리 4.19민주묘지에 있는 노희두 열사 묘
문헌서원 춘향제 열려
오늘 기산면 영모리에 있는 문헌서원에서 춘향제가 열렸다. 문헌서원은 목은 이색과 그의 부친 가정 이곡을 배향한 서원이다. 문헌서원에는 위패를 모신 효정사를 비롯해 문화재로 지정된 가정목은선생문집판각, 목은 선생 영정, 하륜이 지은 신도비 등이 있다. 조선조 사육신의 한사람인 이개. 실학의 선구 토정 이지함, 월남 이상재, 신흥무관학교 교관 이관직 등은 그의 후손이다. 다음은 뉴스서천에 실은 목은 선생에 대한 글들이다.
<사진>춘향제가 열리고 있는 문헌서원. 왼쪽 위로 묘가 보인다. 묘 터는 무학대사가 잡았다 한다.
====================
조선조 사림파의 뿌리 목은 이색
공민왕의 개혁 정치에 힘입어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흥사대부들이
정계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정치가가
바로 목은 이색 선생이다.
공자, 맹자의 고대유학과 구분하여 성리학을 중세 유학이라고 부르는데 그 핵심 철학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다.
이를 완성한 사람은 남송의 주희(1130~1200)였다. 당시 주희가 살던 남송은 참으로 암울했던 시기였다. 요나라와 형제의 연을 맺고 해마다 명주 20만필과 은 10만냥을 바쳐야 했던 송이 요나라를 물리치고자 금나라를 끌어들여 요를 멸망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금(1115~1234)에게 중원을 내주고 장강 이남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태어난 것이 이기이원론이다. 즉 금나라가 송을 침략하고 있는 현실은 열등하고 사악한 ‘기’가 순수하고 올바른 ‘이’를 억압하고 있는 상태로 본 것이며 이가 기를 극복하고 현실로 나타날 때 세상은 바로잡힌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나(支那)인들의 자기합리화를 정리한 것이 주희였다.
이를 고려 땅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안향(1243~1306)이다. 그는 1288년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들어가 원나라의 수도 연경(燕京)에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필사하여, 돌아와 주자학(朱子學)을 연구하였다.
이러한 성리학으로 무장하고 고려말에 등장한 정치세력인 신흥사대부들은 부패한 권문세족을 ‘기’로 보고 자신들 신흥사대부들을 ‘이’로 보았다. 권문세족이란 원이 고려를 속국으로 삼자 이에 빌붙어 권세를 누리던 세력이었다.
이들 친원세력은 친일파들이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처럼 일반 농민들의 토지를 약탈하고 농민들을 노비로 삼았다. <고려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권문세족들은 산과 하천을 경계로 하는 거대한 농장을 가지고 있다.”
농민들은 착취의 손길이 닿지 않는 심산궁곡이나 갯벌이 있는 섬으로 흘러들었다.
신흥사대부들은 결국 ‘이’가 ‘기’를 극복하듯이 부패한 권문세족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깨끗한 개혁세력인 신흥사대부들의 등장은 농민들에게 있어서는 떠오르는 샛별과 같은 존재였다.
공민왕의 개혁 정치에 힘입어 이들 신흥사대부들은 정계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정치가가 바로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 선생이다.
그의 부친 가정(稼亭) 이곡(李穀)이 문과에 급제하고 8년이 지난 31세의 나이가 될 때(1328년 5월 신미일) 외가인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선조들의 고향인 한산으로 돌아와 8세에 숭정산 독서당에 입문, 학문을 시작한 후 1341년 고려 충혜왕 복위 2년, 겨우 14세의 나이에 진사 성균시에 수석으로 급제하여, 16세의 나이에 별장(정7품)의 벼슬을 받게 된다. 26세 때인 공민왕 2년(1353)에 고려 문과에 을과 1인으로 장원급제하고 다음해 3월에는 원나라에 들어가 정동행성 향시에 장원급제, 황제가 친림하는 전시에 2등으로 합격한다.
이 후 원과 고려에서 문한을 담당하는 청요의 직책을 두루 거치다가 공민왕 20년(1371), 44세 때 국가 행정을 총괄하는 관직인 정당문학의 재상 반열에 올랐으며 우왕 8년(1382)에 판삼사사(종1품), 우왕 11년(1385) 58세에 검교문하시중이 되었다.
정몽주, 이숭인, 길재, 정도전, 권근, 하륜, 변계량 등은 목은 이색 선생의
일주문
기둥 두 개를 이용
문을 만들어 놓고
일주문이라 부르고 있다
장구만 도요새
장구만
오늘 정오 무렵 풍광이다.
산벚꽃이 만조가 돼가는 바다를 내려다 보는데
민물도요, 붉은가슴도요, 뒷부리도요, 붉은어깨도요 등이
연신 뒷걸음을 치며 쉬고 있다.
간조때 조간대 하부까지 넓은 갯벌이 드러나면
도요새들은 흩어져 먹이활동을 하다가
만조가 돼가면 저렇게 몰려있게 된다.
어부는
배의 이동통로인 갯골에 이정표 삼아
태극기를 내걸었다.
비록 작지만
판교천이 흘러드는 장구만
이름대로 장구하길 빈다.
어쩐 일인지 환경부에서 2008년
습지보존지구를 지정할 때
서천 갯벌이 대부분 지정됐는데
장구만은 빠져있다.
지금이라도 서해갯벌 전체를
습지보존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간재미
가오리과에 홍어-가오리- 간재미가 있는데
홍어가 가장 크고 간재미가 제일 작다.
충청도 해안지방에서는 갱개미라고 부른다.
양미간이 넓은게 덕이 많아 보이는 관상이다.
지지난 일요일 보령의 한 수족관에서 만났다.
"제발 우리 종족 멸종시키지는 말아다오"
하면서 하소연하는 것 같았다.
붉은어깨도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도요새들은 어떻게 지내나 하고 갯벌에 들러보았습니다.
만조가 된 후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붉은어깨도요들이 몰려와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리에 노란색 밴딩을 한 놈도 보입니다. 사람이 연구를 위해 표식을 달아놓은 것입니다.
평생을 족쇄처럼 달고 다녀야 하니 얼마나 불편할까요.
작두콩
작두콩 씨앗을 구했다.
콩꼬투리 크기가 작두만 하다해서 붙은 이름 같다.
콩도 계란보다는 작지만 메추리알보다는 훨씬 크다.
콩 줄기는 하늘 끝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미국에서 재크라는 이름의 한 소년이 콩줄기를 타고 올라가 천상의 세계에 가서 놀았다는 얘기가 어린이들이 읽는 책에까지 나오는데 그가 타고 올라간 콩 줄기가 바로 이 작두콩 줄기였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 주말에 큰 구덩이를 파고 심을 예정이다.
오방색 콩
청-적-황-백-흑(오방색)
목-화-토-금-수(오행)
오행의 원리에 따라 인종도 황인종-흑인종-백인종-홍인종,
청인종도 있었다지요.
콩에도 다섯가지 색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청색-녹두, 푸르데콩, 완두콩, 콩나물콩
적색-팥(적두)
흑색-흑태, 서리태, 서목태
황색-황태(메주콩)
그런데 완전 백색은 바로 이 작두콩인가 합니다.
작두콩에는 적색과 백색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알락꼬리마도요
밀물이 밀려온다.
매일 겪는 일이지만
불안 초조감이 역력히 보인다.
큰뒷부리도요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는 도요새는 한국 서해안이 중간기착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잘 알려진 새이다. 이 가운데 부리가 앞으로 굽어서 붙은 이름인 큰뒷부리도요는 가장 먼 거리를 비행한다. 한 해 3만5천km 이상을 비행을 하는 이 새는 ‘지구촌의 방랑자’라고 별명을 붙일 만하다.
미국의 지질조사국 연구자들이 큰뒷부리도요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위치 추적장치를 달았다. 그 결과, 이 새는 뉴질랜드와 호주 동부에서 북상하여 쉬지 않고 1만3천㎞를 날아 서해안에 들러 약 한 달 반 동안 영양분을 비축한 다음 또다시 서해안에서 알래스카까지 밤낮으로 6,500㎞를 날아갔다.
알래스카에서 번식을 끝낸 큰뒷부리도요는 여름과 가을 사이에 다시 남행길을 올라 한번도 쉬지 않고 17,000km를 날아 뉴질랜드와 호주 동부로 날아갔다. 이 기록은 사람들이 측정한 새들 가운데 가장 긴 비행기록이라고 한다. 제트여객기로 약 23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 이처럼 호주나 뉴질랜드로 날아갈 때 한반도 서해안에 들르지 않는 이유는 풍향을 이용하여 비행을 쉽게 하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장거리 비행을 하기 전 큰뒷부리도요는 갯지렁이 등의 영양분을 최대한 많이 먹는다. 무거우면 비행이 어려우므로 지방을 최대한 모으는 대신 내장을 줄여 몸무게를 가볍게 한다고 한다. 장거리 비행을 하고 나면 500g 정도인 이 새의 몸무게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보잉 747의 경우 중량의 45퍼센트가 연료 무게라 하는데 큰뒷부리도요의 경우 이보다 연료 비중이 높은 셈이다.
200시간 이상 8일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날면 잠은 어떻게 할까. 아직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철새들이 장거리 여행을 할 때 뇌의 절반씩 자는 방법을 쓰듯이 큰뒷부리도요새도 같은 방법을 쓰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또한 이같은 철새들은 몸 속에 있는 자성물질이 지구 자기장의 방향을 감지하는 나침반과 같아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